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 북문.
▲ 동남쪽 복원된 성벽.
▲ 미덕암.
▲ 산성유래비와 제단.
▲ 북문 터 옆 성벽.
▲ 암문밖 성벽.
▲ 남서쪽 암벽.

경북 구미 장천면 천생산은 해발 407m의 그리 높지 않은 바위산이다. 정상부가 평평하다. 한일(一)자를 닮았다. 지역 주민들은 일자봉이라고도 한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처럼 보인다. 한국의 '테이블 마운틴'인 이름이 붙은 연유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엎어 놓은 함지박 모양이기도 하다. 함지박은 경상도 사투리로 '반티'라고 한다. 반티산이란 경상도 이름을 덤으로 얻은 이유다. 천생산은 구미공단 지역이나 황상동 임수동 등지서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 병풍처럼 보인다. 높이 100m 이상의 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바라보는 이 누구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한문 이름 천생산(天生山) 그대로 하늘이 내려 보낸 산일지도 모른다. 다가가보면 서쪽은 험준한 천길 수직 낭떠러지다. 동쪽도 험준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쪽은 계곡이 있는 능선은 조금 완만하다. 천생산성은 천생산의 지형과 산세를 활용한 산성이다. 서쪽 천연절벽을 방어시설로 활용하고 반대편 동쪽 경사면에만 성곽을 쌓은 형태다. 동쪽 성벽은 정상 가까이 8, 9부 능선을 따라 가며 쌓았다. 산정 가까이에는 내성을 쌓은 흔적도 보인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축성 양식을 보면 자연할석을 그대로 쌓은 삼국시대 양식이다. 삼면을 둘러싼 천연 암벽을 성곽으로 활용해 방어요새로는 적격이다. 절벽이외 사면에만 석성을 쌓아 그대로 난공불락 철옹성을 만든 것이다. 성곽을 축조하기 전 산세와 지형을 세세하게 두루 살핀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천생산성은 둘레가 324보(步), 천연석벽이 절반 넘는 천연요새로 성안에는 우물 하나, 작은 연못 2개소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동, 남, 북에는 각각 성문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남문은 무너지고 북문은 일부 붕괴됐다. 동문만 겨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성안에는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 등 건물도 여러 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터만 휑하다. 산성 수호사찰 만지암(萬持庵) 또한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천생산성은 임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이끌고 왜적을 맞아 싸운 산성이라고 전해진다. 산성 남쪽 밖 툭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 미덕암(米㥁岩)은 그때 전설을 지금껏 전해준다. 천생산성은 성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었다.

산성을 둘러싼 왜군은 산기슭에 큰 못을 파서 산성 안의 물줄기를 차단하고 우물의 물을 줄이는 작전을 폈다. 그러나 미리 눈치 챈 곽재우 장군은 병사들에게 미덕암 너른 암반위로 자신의 말을 몰고 가 흰쌀을 말 등에 여러 번 퍼붓도록 했다. 마치 말을 물로 목욕시키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왜군은 성 안에 물이 넘치는 줄 알고는 마침내 퇴각한다. 장군의 지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쌀로 은덕을 입었다는 뜻 미덕암은 이때부터 불렸다고 한다. 천생산성은 임란 후 그 중요성이 인정돼 꾸준히 수축이 이뤄졌다. 선조 29년(1596년) 인동현감 이보(李甫)가 대대적으로 수축한 뒤 1601년과 1604년 관찰사 이시발(李時發)과 찰리사(察理使) 곽재우가 재차 수축한다. 조선시대 내내 방어책임자인 별장(別將)을 배치해 외침에 대비한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이 짐작된다. 천생산성은 2013년께 거의 복원 정비를 마무리했다. 역사적 문화유산을 전승보존하고 역사, 문화체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천생산성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가까운 출발지로는 천생산성 삼림욕장 또는 숲체험장과 천룡사, 천생사(현 쌍용사) 등이 있다. 천룡사에서는 수직 암벽을 올려다 보며 암릉을 타고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숨이 너무 차다. 천생사에서는 북동쪽 산능선을 따라 가다가 계단을 타고 600여 m만 올라가면 바로 북문 터다. 이 쪽은 다들 산행이 쉽다고 한다. 무엇보다 무난한 출발지는 천생산성 삼림욕장이 제격이다. 탐방객들도 대부분 이 구간을 이용한다. 능선을 조금 타고 걷다가 암릉을 지나면 미덕암 바로 아래 계단까지 손쉽게 이르기 때문이다. 계단 끝에서 왼쪽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미덕암이다. 너른 암반 위는 주위 전경이 너무 좋다. 산성안에서 탐방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이곳에 올라서면 구미공단이 발아래 펼쳐진다. 서쪽으로 낙동강과 유학산, 금오산자락, 김천시가 눈앞에 다가온다. 미덕암에서 물러나 오른쪽 산허리를 감고 돌면 구비치는 성곽이 이어진다. 안쪽 둘레 길을 걸으면 수구와 장대 성문 터 등이 잇따라 나타난다. 성벽은 후대 복원된 구간이 많다. 하지만 선조들이 힘겹게 쌓은 초축 당시 성곽도 적지 않다. 이 구간을 지나다 보면 애잔한 마음이 절로 든다. 성곽은 길이가 840m에 불과하다. 그러나 낭떠러지마다 그대로 성곽 역할을 한다. 북문지에서는 천생사로 하산하는 능선길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 산허리를 감아 돌면 오른쪽 발아래 아찔한 낭떠러지가 나온다. 천생산의 또 다른 천길 암벽 병풍이 후미에 보인다. 이어 헬기장이 나오고 전망 좋은 산길을 잠시 걸으면 산성유래비와 제단이 나온다. 바로 아래가 미덕암이다. 먼 전경을 바라보며 한 숨 돌린 뒤 남쪽 계단을 타고 하산한다. 계단이 없으면 분명 난코스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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