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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북엇국 친구

기사승인 2020.03.25  19: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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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성제 수필가

   
내 딸은 계란 프라이 하나 제대로 붙여보지 않고 결혼을 했다. 막상 딸을 보내놓고 후회가 막급했다. 집안일을 좀 가르쳤더라면 살림고생이 덜할 텐데 싶었다. 사실 그게 가르친다고 다 될 일은 아니다. 자연스레 보고 배움도 크겠지만 요리 실력이나 살림살이 능력도 계발하기 나름 아닐까.

딸이 제 손으로 차린 식탁을 동영상으로 보내오며 말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엄마가 해줬던 맛이 점점 길을 내 줘. 그 길 더듬더듬 가다 보면 딱, 그 맛이 나와!" 게다가 내가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요리까지 더해서 왔다. 맛은 사위한테 물어보았다. 사위는 딸이 무엇이든 잘하며 음식 솜씨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사위가 결혼 전엔 자취를 하며 빵과 치킨으로 끼니를 때웠던지라 그 말을 다 믿을 순 없지만, 딸의 숨은 솜씨를 자꾸 캐내는 듯한 재미에 빠진 것 같았다. 하나를 알면 그 하나를 아는데 그치지 않을까 우려해 다시 둘을 알고자 하는 구지기이(求知其二)의 사람처럼 말이다. 딸이 서슴없이 이것저것 솜씨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마 사위 덕분이리라.

결혼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보내온 문자에 "엄마, 내 손에 아무래도 바퀴가 달렸나 봐. 모든 게 다 미끄러져"라고 했을 때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름병이 깨졌다, 딸기잼 통이 저절로 미끄러졌다며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고 있던 딸의 영상을 보고 달려갈 수 없어 발을 동동거렸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 야무진 손의 힘도 있다는 것을 사위는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부엌일에 관심이 많았다. 콩나물 발 떼는 일도, 전을 프라이팬 위로 던져 올렸다 착지시키는 일도, 설거지도 재미있었다. 엄마가 요리를 할 때면 눈여겨보았다가 자주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런데 음식에 대한 나의 지론은 좋은 맛이지 그럴듯한 모양이 아니어서 굳이 그 음식에 제격인 그릇만 사용하는 건 재미없었다. 밥을 보시에도 담아보고 도자기 컵에도 담아보고 국은 오목한 접시에 담아보다가 타박을 듣기도 했지만, 부엌살림도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그 재미도 끝이 없었다.

몇 년 전, 집으로 놀러 온 친구와의 일이다. 그날 몸이 좋지 않아 어릴 적 먹었던 북엇국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하던 대로 참기름에 북어를 달달달 볶다가, 무와 조선간장을 넣고 다시 볶은 후 물을 부어 달이다시피 하는 북엇국. 먹기 전에 다진 파와 소금 간을 하면 그만인 북엇국은 우리 집에선 나름 보양식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게 북엇국이냐?"라며 겨우 그릇을 비우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국물은 멀겋고 간은 싱거웠다. 친구가 왔으니 급한 마음에 국물을 더 우려낼 시간이 없었던 것이 하등으로 평가받고 말았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들를 일이 생겼다. 나는 호박수프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아서라, 내가 해줄게"라고 했다. 나는 북엇국을 만회시킬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일단 껍질 벗긴 호박을 잘게 썰어 전자레인지에 익혔다. 그런 후 냄비에 넣고 으깼다. 양파를 곱게 다져 버터로 볶은 후 으깬 호박과 우유를 적당히 부어 뭉근하게 끓였다. 소금으로 간을 치고 다진 파슬리도 올렸다.

수프용 그릇에 담아 식탁을 차렸다. 친구가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더니 푸하, 웃었다. 나는 상관의 평을 기다리는 견습생처럼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는 또 한 숟가락을 떴다. "나아지긴 했네, 북엇국!" 친구가 그때의 북엇국을 떠올리는 걸 보고 힘이 빠졌다. 호박스프 맛이 좋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니가 젤 잘하는 게 뭐꼬?"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에 나는 다시 기회를 얻어야할까 싶어 "수제비!"라고 했다. "수제비이? 내가 하는 게 낫겠다!"

내 솜씨로 손님 대접한 최초 음식이 수제비였다. 초등학교 다닐 적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친척 할머니가 오셨다. 점심 무렵이라 수제비를 끓이기로 작정하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일단 연탄불에 다시물을 올려놓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소금을 척척 뿌려 글루텐이 탱글탱글해지도록 치댔다. 끓는 다시물에 간을 하고 반죽을 떼어 손바닥에 얇게 펼친 후 조금씩 떼서 끓였다. 마지막으로 반달썰기 호박과 다진 마늘, 어슷 썬 파를 넣고 끝이었다. 할머니는 그날 이후 잊을만하면 수제비가 입에 살살 녹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내 솜씨를 더 알길 원하셨다. 나는 수제비 이후 자주 요리에 도전을 했었다.

북엇국에 이어 호박수프를 잃고 나니 수제비만큼은 지켜야겠다 싶었다. 구지기이(求知其二)의 인물이 상등인물이라면, 하나를 아는데 그쳤다가 남의 말을 듣고 비로소 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지기이(始知其二)의 인물은 중등이라고 한다. 하나를 아는데 그치고 남이 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줘도 이를 믿지 않는 지지기일(止知其一)의 인물은 하등이며, '지지기일'에 만족해하며 남이 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이를 극도로 미워하는 오언기이(惡言其二)의 인물은 최하등이라고 하는데, 내 친구는 어디에 속할까?

띵똥! 사위와 딸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영상이 왔다. 집에 손님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부디 구지기이(求知其二)의 상등 손님이면 좋겠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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