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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山筆談]봉준호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

기사승인 2020.02.19  19: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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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태 시사평론가

   
철학이 신학의 시녀라면 영화는 문학의 무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안소니 퀸으로 이미지화되고 ‘아마데우스’를 보고서야 볼프강 모차르트를 기억하게 된다. 영화계 아카데미상은 문학에 비유하자면 노벨상이라 할만 하다. 우리 문학에 아직 노벨상이 없는 것에 말들이 많다. 작가 역량, 국가적 위상, 국제 사회에서 로비, 번역과 통역 문제 등을 아쉬워 한다. 기생충의 4관왕 수상으로 여러가지 기우들이 불식되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영화에 대해 식견을 한 아름 높이는 중이다. 놀랍고 날카로운 분석들이 쏟아졌고 토론 솜씨들도 부쩍 향상되었다. 어지간한 회식자리 영화 얘기들만 받아 적어도 기사나 평론이 되지 않을까. 국가 현안에 늘 그렇듯이 놀라운 결집력의 국민성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국민들의 취미를 어째서 그토록 국가가 관리하려 했는지 지금도 묘하다. 가장 흔한 독서와 음악 감상, 그리고 영화였다. 여유가 없는 생활에 그러한 취미가 가능 했을까. 독서는 하다못해 만화방도 있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도 감상하면 된다. 그런데 영화를 취미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을에 텔레비전도 흔치 않아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 보기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취미는 영화 감상이라 생활기록부가 전해 주고 있다.

취직하고 얼마 안되어 필자는 신혼 살림을 이른바 15평짜리 반지하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만삭의 아내와 주말에 영화를 보는 게 당시엔 레저의 거의 전부였다. 어느 주말에 영화를 두 편(세 편이었을지도) 보고 지쳐 돌아와 신발을 벗자마자 바로 쓰러져 잠든 이야기는 허니문 최고 무용담으로 자리잡아 있다. 낙원 상가 피카디리와 대한극장을 영화 시간에 맞춰 뛰어 다녔으니 가히 철 없는 청춘이었다.

2018년 우리나라 영화 관객 수는 2억 1,639만 명이며, 매출액은 1조 8,14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관객 수는 1억 1,015만 명으로 8년 연속으로 50%대를 유지했다. 일인당 영화 관람횟수는 4.18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기생충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개인적 요소다. 아버지 서재에서 영화 서적을 탐독하며 일찌감치 영화로 방향을 잡은 봉준호 감독의 공로가 무엇보다 크다. ‘플란다스의 개’‘옥자’ 실패를 아랑곳 하지 않고(어떤 의미에서 예상이라도 한 듯) 우직하게 ‘봉 장르’ 완성을 향해 매진했다. 첫 장면부터 기생충을 표현하는 치밀한 서술 방식에 관객들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봉테일’이 영리하지 않다면 모든 것이 군더더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네 식구가 박 사장 집에 들어가는 과정은 간결하고 경쾌하다. ‘부잣집 가는 길’ 멜로디는 절묘하고 짜릿한 공포다.

둘째, 한국의 헐리우드 충무로의 영화적 토양이다. 소설이나 웹툰, 시나리오 당선작 등 이야기가 우선 풍성하다. 이를 영화화 하는 프로세스가 효율적이다.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사활이 결정된다. 기획, 제작진, 투자자, 배우, 미디어 등 전문 선수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일본 영화계의 제작위원회 문제가 한국에는 없다. 제작위원회란 일종의 영화 제작 조합으로 복수 출자사가 공동투자하고 사업을 진행한다. 의사결정은 만장일치가 기본으로 참신하고 색다른 제안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 각본은 물론 감독, 캐스팅에도 일일이 위원회 승인이 필요하다. 창의성 발휘도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다.

셋째, 거대 자본의 후원이다. CJ엔터테인먼트, 바른손 등 영화 자본 형성이 원활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 영화콘텐츠를 연구하는 통신경제연구소 박창헌 박사는 "유럽은 영화를 문화개념으로만 접근하고 부가가치를 올리는 산업적 연구는 게을리해 할리우드 콘텐츠에 시장을 내주게 된 것"이라 분석했다. 문화적 기반 위에서 ‘산업’으로 승화시킨 한국 영화 산업의 우월성이 입증된 것이다.

넷째 국가 사회적 문화가 ‘친영화적’이다. 일만 년의 장구한 역사에 점철된 수 많은 설화와 신화, 민담이 영화적 테크놀로지로 ‘육화’하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 왕성한 창작력이 상승 욕구로 무한히 발휘되고 있는 토양이다. 이런 의미에서 100년 역사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에 연착륙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5만 개가 넘는 스크린 수로 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무리 양적으로 성장한들 영화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과 제작 환경의 획일성, 당국의 검열 강화라는 환경에서는 훌륭한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

AFP 통신은 ‘블랙리스트에서 블록버스터로 변화를 맞은’ 봉 감독을 축하했다. 봉 감독 자신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시간은 한국 예술가들에게 악몽같은 몇 년이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명명하기는 힘들었다"고 회상하며, "표현의 자유가 회복된다면 미래 역시 더욱 밝을 것이라 믿는다"며 진심을 드러냈다.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기생충 같은 괴소문들이 판을 치는데도 예술적 표현의 길은 멀고 험한가 보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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