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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산책]설날과 설거지

기사승인 2020.01.28  2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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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일 수필가

   
학창시절 미국유학을 다녀온 유명한 학자들의 경험담을 많이 들었다. 전형적인 스토리는 단돈 100달러를 들고 아는 이 없는 공항에 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식당에서 설거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서 공부했다는 고생담이 이어진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설거지 아르바이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취직 후 구내식당에 고용된 아주머니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식판을 쌓아놓고 세척을 하는 장면은 설거지가 쉽지 않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설거지는 아직 아르바이트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큰 힘이나 기술이 없이도 할 수 있지만 큰돈이 되지도 않는다. 과외나 건설현장의 노가다로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식당에서도 주방이나 서빙 등 다른 일과 같이 하는 것이지 설거지만 따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는 듯하다.

남자들이 설거지를 본격적으로 해보는 것은 군대에서다. 많은 남성들에게 식기세척은 군생활의 추억과 악몽이 함께하는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부대마다 다르지만 내가 나온 부대는 내무반 서열이 관물 당번과 바닥청소 당번을 끝내면 식기당번을 거쳐 군화당번을 하고 내무생활이 편한 병장이 되는 순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바로 위의 고참과는 짠밥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고 후임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라서 관물과 바닥청소 당번을 오래하였다. 식기 세척당번과 군화 당번은 금방 지나가고 바로 제대를 하는 바람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설거지를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다.

설거지는 귀찮기는 하다. 미뤄놓기 쉽다. 식사 준비는 당장 배고프니 생각 없이 할 수 있지만 밥을 다 먹은 후 설거지를 하려면 갑자기 마음이 느슨해진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속담이 적용되는 경우다. 그러나 설거지를 미뤄놓으면 부엌에 냄새가 나고 집안이 지저분해진다. 청소는 며칠 미뤄도 표시가 안 나는 경우가 있지만 설거지를 안 하면 바로 표가 난다.
나는 집을 떠나 근무지에 있을 때 될 수 있으면 설거지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대부분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숙소에서는 거의 밥을 먹지 않는다. 어쩌다가 식사를 하게 되면 컵라면이나 마른 반찬으로 때워서 설거지를 하지 않도록 한다. 대학 때 친구에게 배운 것인데 친구의 자취방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 때 밥풀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 설거지가 어려워 그냥 두어도 괜찮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설거지는 짜증도 난다. 남이 먹은 밥그릇을 씻을 때이다. 특히 명절에 여성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일이 많아 명절을 노동절이라고 하는데 그나마 음식 준비는 가족이 모여서 같이 하면서도 유독 설거지만 여성의 몫이었다. 요즘은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남이 성과를 얻은 것을 뒷정리를 하는 경우를 설거지라 말하기도 한다. 특히 전임자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려면 짜증이 안날 수 없다.
나는 직장에서 이런 의미의 설거지를 여러번 하였다. 인사발령을 받고 새로운 자리에 가서 앞사람이 저질러놓은 일을 마무리 하느라 귀찮았던 기억이 있다. 치고 빠지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참 뜰 때 성과를 내고 스포트라이트도 받은 후 뒷마무리를 안하고 다른 부서로 옮긴다. 뒤에 투입된 사람은 온갖 귀찮은 일만 하고 빛은 못 보는 것이다. 처세술에 어두워서려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 진짜 설거지도 가끔 한다. 맞벌이다 보니 집안일을 모두 아내가 할 수는 없다. 주말부부가 주말에 집에 오면 집안일을 거들어야 한다. 이때 해주기 가장 무난한 일이 설거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밥 그릇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먹은 밥그릇도 군말 없이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이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이번 설 명절에 형제들이 펜션에 모였다. 1박을 하고 다음날 점심 식사 후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먹은 점심의 설거지를 하여야 한다. 제수씨가 아닌 동생들이 설거지를 했다. 나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설’날 잔치를 마치고 상을 ‘걷는’ 것을 ‘설거지’라고 한다는 농담을 하며 덕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명절에 남자들이 설거지도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어느덧 자연스런 흐름이 된 것 같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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