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시사평론가

설날은 한가위와 함께 우리 명절을 대표한다.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기대감이 행복감을 증폭시킨다. 쌀쌀한 계절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따뜻한 온기와 훈훈한 정을 느끼는 자리다. 설빔으로 마련한 옷과 신발로 한껏 멋을 내고 스스로의 마음과 주변 기운을 산뜻하게 가다듬어 본다. 고속도로 기나긴 정체 행렬 속에서 덕담을 떠올리며 세파에 시달려 잊혀진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일상으로 복귀한다. 할아버지 독립 투쟁 무용담과 한강의 기적 부모님 이야기에 가족의 연대를 넘어 민족적 동포애마저 느끼게 된다. 영화 ‘국제시장’ 같은 이야기가 우리 가까이에 있었구나 하면서 젊은 주먹들은 다시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순서대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어르신들 건강과 부모님 은퇴 설계를 들으며 청춘들은 삶의 방향성을 가늠해 본다. 승진, 시험, 혼사, 출산, 졸업, 신앙 등이 화제로 떠오르게 된다. 어느 정도 질서가 갖춰진 집안에는 장유유서가 적용된다. 요양기관에 어르신들을 모신 경우는 명절에 문병으로 만나게 된다. 침대에 누워 계신 분들에게 오래 사시라는 인사는 할 수도 안할 수도 어려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집안마다 있는 아픈 손가락 얘기도 안 나올 수 없다. 누가 사업만 말아먹지 않고 사고만 안 쳤어도 어디 땅이 지금 얼마를 호가하고 아파트가 몇 채나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문중 땅을 팔아서 얼마가 돌아왔다는 얘기, 어디가 개발이 될 것이니 팔지 않았으면 꼭 가지고 있으라는 주문 등이 이어진다. 사회, 문화, 경제 이야기를 거슬러 화제가 바닥나면 결국 정치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어느 후보가 그 학교를 졸업한 게 맞느냐 누구는 스펙이 훌륭하더라, 현직이 한 게 뭐냐 참신한 인물이 나와야 된다 등등. 뉘 집 자식이 출마를 했는데 자네는 생각이 없는가. 유력한 후보와 친하냐 안 친하냐는 질문도 나온다. 집안 말아 먹는 정치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는 호령도 반드시 따라 붙는다.

정치 얘기가 안 나오면 모를까 기왕 나오게 된다면 한번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하는 시간도 가져 볼만 하다. 국민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일은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다. 극심한 분열이 걱정되는 사람들은 절대로 정치얘기를 하지 말자는 입장도 있다. 가족, 친지, 동료, 선후배가 등 돌리고 척을 진 사례를 들면서 정치 얘기는 입밖에 내지 못하게 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능력이 모자란다면 민초들이 나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눈부신 성장을 단기간에 이뤄낸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다. 서구 문명이 길게는 일천 년에 걸쳐 쟁취하고 정착시킨 민주화를 우리는 반 세기 만에 속성으로 실현했다. 일본 제국주의 강제 지배로부터 벗어난 것도 채 백 년이 지나지 않았고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정책은 아직도 실행 도중에 있다.

광속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할 겨를이 없었다. 사회 모든 영역이 아직도 실험중이다.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자고 나면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를 검증할 시간도 없이 사색 당파 국회의원들이 제왕적 대통령과 뒷거래하는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정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소수의 지방 토호 세력들과 정치 자본이 결탁하여 시민들의 삶을 인질로 잡고 있다. 굴비나 오징어도 공천만 받으면 뽑아 주는 유권자가 더 문제다.

의회 민주주의가 성숙하여 자리잡을 충분한 시간을 우리는 가지지 못했다. 사회 저변에 승만태조, 정희대왕, 전노 무신정권, 영삼종, 대중왕, 무현조, 명박군, 근혜여왕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지. 관존민비라는 권력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서구 각국이 300여 년 전에 폐기 처분한 왕권신수설 망령이 서울역 광장에 서성거리고 있다면 국민소득 4만불 시대는 구현하기 어렵다. 영웅호걸은 하늘이 내리는 게 아니라 지혜롭고 성실한 유권자들이 바르게 선택해서 뽑아야 한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현명한 유권자들의 손가락에서 나온다.

압축 성장으로 쌓아 올린 한강의 기적, 고도 경제의 뒤안길에 어둠이 짙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아 새 나라를 건설할 때만 해도 가난만 몰아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육이오 사변의 상처를 선진국 원조로 견뎌내며 식민지배 위로금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종합제철, 소양강댐을 건설했다. 초가 지붕이 사라지고 호롱불이 전기로 바뀔 즈음 북한을 따라 잡았다고 시바스리갈 위스키로 건배할 때가 좋았다. 군사정변 주도세력들은 이를 눈 앞의 성공이라 자축했을 것이다. 당장의 배고픔 해결이 급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짚어야 할 원칙들이 묻혀버린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5천만 국민들의 ‘설날 컨센서스’가 대한민국 명운을 가르게 될 수도 있다. 욕지기를 참아 누르고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더라도 정치 얘기를 활발히 나누는 게 좋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서식하는 ‘정치 기생충 악성 바이러스’를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좋은 기운으로 충만한 경자년 설날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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