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하늘이 히멀건해지더니 겨울비가 추적인다. 을씨년스럽던 대지가 찌뿌둥하게 젖는다. 쨍쨍 언 땅을 강제로 녹이려는 듯 제법 세찬 비다. 눈보라를 몰고 와 동장군의 기세를 한껏 뽐내려던 바람도 골이 났는지 시무룩하다. 마치 곤란함을 얼버무리려는 약자의 헛웃음 같은 회색빛 날씨다.
풍요와 즐거움의 상징인 눈은 내리지 않고 비만 줄줄 내리는 일월이다. 가랑눈, 싸락눈, 도둑눈, 함박눈으로 태어나던 그 많던 눈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솔잎 눈썹에 숯덩이 코, 빨간 대야를 눌러쓰고 골목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피워 주던 눈사람. 매서운 추위에 맞서 소한, 대한 추위 다 지켜주고 한 사흘이나마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 지펴주던 그 눈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만들 눈이 없어서다.
아쉬운 데로 희뿌연 창문에 손가락으로 눈사람을 그려본다. 벌거벗은 외투에 솔방울 단추, 빗자루 팔을 활짝 펴고 있다. 마치 저를 그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위로라도 하는 것 같다. 눈과 얼음은 상징학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 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예기치 않는 행운을 가져다주고, 하얀 눈이 세상의 어려움을 덮어주기에 행운과 성공을 상징한다고도 했다. 이러다 올 겨울의 행운과 성공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왠지 불만 같은 우울감이 든다.
달달한 것을 먹어야만 될 것 같다. 길게 줄을 서 먹던 그 집 호떡이 생각나 눅눅한 기분을 재우려 시장으로 향한다.
횡당보도 옆 추어탕 집 담벼락, 그 곳에 먹거리 난전이 생긴 건 언제인지 기억에 없다. 어느 날 인가 빨간바지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아저씨가 좌판대를 설치하더니 붙박이로 좌정해 버렸다. 각종 과일 박스가 놓이더니 때깔 좋은 고구마 소쿠리도 등장했다. 점점 판을 키우더니 투명 천막까지 치기에 이르렀다.
오가며 빨간바지를 곁눈질 했다. 김 서림에 어우러져 나오는 어묵의 국물 냄새가 별로다. 코끝을 구수하게 자극해 발길을 붙잡아야 하는데 별맛이 없어 보인다. 왕초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의 인사성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눈만 마주쳤다하면 가늘고 긴 눈꼬리를 반쯤 접으며 인사를 한다. 멀뚱멀뚱 몇 번 쳐다보다 온통 친절로 무장된 저 빨간빛 중독성 눈인사에 단골이 되고 말았다.
㏊어묵 하나를 급하게 구겨 넣고 다시 길을 나선다. 멸치국물 냄새만 나던 국수집 열린 창문으로 고소한 냄새가 난다. 깨금발을 하고 빠끔 들여다본다. 점심장사를 마친 인근 식당 아주머니들이 모여 막걸리 안주로 배추 전을 굽고 있다. 손님이 뜸한 날, 이렇게 여유롭다며 반기는 정선댁에 국수 한 그릇 시킨 뒤, 슬며시 엉덩이를 보탠다. 막걸리 한 사발에 배추 전, 국수까지 사천 원에 최상의 포만감을 갖는다는 건 단골이기에 가능한 최고의 대접이다. 저 편안한 배품은 봄철의 햇볕과 봄바람의 따뜻한 노란색이다.
이미 그득해진 배를 밀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얼굴을 하고 시장으로 들어선다. 눈비 걱정 없이 현대식으로 단장한 시장은 의외로 사람들로 붐빈다. 군밤과 군고구마가 보이지 않는 겨울 시장통을 휘젓고 다니다 길게 줄이 선 호떡집에 끼어든다. 오랜 타국생활을 하던 막내가 향수병을 이겨낸 명약과도 같은 그 호떡집에 단골이 된지는 오래다. 달달한 호떡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의 표정마저 달달하다. 딸들에게 난전을 물려주고 뒤로 나앉은 노모가 막내의 안부를 물어온다. 견과류를 듬뿍 넣어 직접 구워 건네주는 노모의 호떡을 받아들고 나 역시 저들과 닮은 표정이 된다. 사람들의 표정마다 오렌지색 호떡이 고소하게 익어간다. 이렇듯 단골의 빛깔은 그저 자주 오간다고 해서 의미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어떤 빛깔의 용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들엔 저마다 고유의 빛깔이 있다. 철철이 변하는 계절이 그렇고 각자의 인생살이도 그렇다. 감성의 계절인 봄은 노란색이고, 폭염이 작열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붉은 색이다. 이성의 계절인 가을은 푸른색이 아닐까. 하늘은 남빛으로 변하면서 부쩍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과 얼음의 겨울은 단연코 흰색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눈싸움할 권리와 눈사람 만들 권리를 빼앗아 간 듯한 이 회색빛 겨울에 너무 많은 걸 빼앗겨버린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편리한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다. 컬러는 아름답고 스피디하다. 너무 현란해서 어지럽고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소중한 빛깔을 지니고 있다. 설령 한날한시에 태어났어도 각자 지닌 성향과 풍파에 따라 다른 빛깔의 삶을 산다. 세상이 총천연색인 것은 이렇듯 각기 다른 슬픔과 기쁨이 있고, 다른 빛깔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없이 내 빛깔을 남에게 내보여주는가 하면 남이 드리운 빛깔을 인정하기도 하면서 어우러진다. 그리고 내면에 간직한 또 다른 감성이라는 빛깔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눈사람이 없어도 더불어 나누고 즐기는 소박하지만 지속 가능한 따뜻한 빛깔의 겨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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