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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문화유산답사기]<6> 창녕 화왕산성

기사승인 2019.12.02  19: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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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경남 창녕군은 1세기 전후, ‘삼국지’ 변진 24국 소개에 나타난 불사국이 가장 오랜 기록이다. 이 후 가야시대 비화가야(非火伽倻)로 존립했으나 마침내 신라에 병합됐다. 비화가야의 진산(鎭山)이 창녕읍 동쪽 화왕산(756.5m)이다. 이 산의 험준한 남, 북 봉우리 사이에 말안장처럼 생긴 분지가 펼쳐져 있다.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다. 남쪽은 천길 절벽으로 보기만 해도 아찔할 지경이다.

화왕산성은 이처럼 험준한 암벽을 그대로 살려 쌓은 석성이다. 높고 낮은 골짜기를 따라가며 분지를 빙 둘러쌓아 흔히 포곡식 산성으로 분류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둘레는 약 2.7㎞에 이른다. 형태는 앞뒷면이 모두 모난 자연석이 또는 가공한 돌을 사다리꼴로 쌓았다. 서쪽 일부 구간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흔적도 눈에 띈다. 성벽은 높이는 2~4m가량이고 너비는 3~4m에 이른다. 자연암벽이 자리한 구간에는 다른 구간보다 더 높게 쌓았다.

산성을 드나드는 입구는 서문과 동문, 남문 등 세 곳으로 추정된다. 서문과 남문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다만 터는 남아 있다. 그중 동문은 계단과 기둥돌 등 형체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너비 1m, 높이 1.5m 가량 큰 돌을 정연하게 쌓은 좌우 석벽은 아직도 견고하다. 동문을 들어서면 멀지않은 분지 한가운데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의 전설을 담은 연못이 보인다. 성벽을 따라 남쪽 정상부로 올라가면 배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대홍수 때 배를 묶어둔 바위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난 2009년 정월대보름 억새태우기축제에서 갑자기 바람 방향이 바뀌며 희생자가 많이 난 지점이 이 부근이다. 축제는 '화왕산에 불이 나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저간의 속설에 따라 대보름날마다 열렸지만 참사이후 중단됐다. 동남쪽 성벽 구간에서는 무너져 내려 앉은 수문도 확인된다. 화왕산성 축성기록은 불분명하다. 창녕군이 비화가야 시절 쌓았다는 얘기만 전해질 뿐이다. 물론 신라나 고려시대 축성기록도 없다. 하지만 ‘태종실록’에 1410년(태종 10) 2월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요한 산성들을 고쳐 쌓았다는 기록으로 미뤄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은 영남땅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자양분으로 번성한 소국이었다. 위치도 낙동강 중류의 넓은 곡창지대 중심에 자리해 있다. 가야권 소국들을 방어하는 군사전략적 요충지이다. 이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려는 신라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가야로서는 당시 가장 견고한 산성이란 방어시설은 당연히 갖춰야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기국가이던 옛 비화가야 때 쌓았다는 전설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성내 본래 구조는‘세종실록지리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둘레는 1천217보, 우물 9곳, 연못 3곳, 군량미를 저장하는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른바 9천3지 자리는 한가운데 지금도 형체가 뚜렷하게 보인다.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기왓장 조각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조선조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화왕산성은 성종 때 한 때 방치된 채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 중요성은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양란을 맞으면서 되살아났다.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의병장이 성곽을 고쳐쌓고 본진을 설치한 것이다. 망우당은 이 성을 본거지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진주를 거쳐 영호남 진출을 꾀하던 왜군부대 격퇴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화왕산성은 임란 후에도 한 두 차례 보수됐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까지 온전한 형체를 유지해오고 있다. 국내 다른 산성에 비해 형체가 거의 온전하게 남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는 크다. 지금도 성벽 안팎으로 발굴과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발굴조사에서는 곳곳에서 가야, 신라, 고려, 조선시대 토기, 자기들이 다량 출토됐다. 가야 이후 조선 후기까지 장기간 군사시설로 중요하게 쓰여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입증해주고 있다. 앞으로 성문과 누각 등이 옛 건물, 성벽과 함께 완벽하게 복원되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상할 것은 분명하다.

화왕산성은 1963년 문화재관리국 태동직후 사적64호로 지정됐다. 화왕산성 등반로는 여러 코스가 분산돼 있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자하곡매표소에서 출발하는 1, 2, 3코스다. 자하곡은 ‘계곡의 붉은 노을’이란 뜻이다.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을 지켜낸 망우당 휘하 의병들이 인근 함양 황석산성 대패 소식에 피눈물을 흘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코스는 배 바위~남문~허준 세트장~동문~정상, 2코스는 화왕산장~환장고개~서문 터로 가장 가깝다. 3코스는 도성암~정상~서문 터로 거리가 좀 멀다. 3코스는 가파르지만 내려오기에 알맞아 하산 시 에 주로 이용한다. 각 코스마다 중간에 깎아지른 암벽바위가 눈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힘겹게 오르다보면 2시간 이내 확 트인 산 정상분지를 품에 안아볼 수 있다. 성벽은 산정과 매우 가깝다. 산정과 배 바위 인근 성벽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영산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저 멀리 현풍도 조망된다. 화왕산은 26만㎡ 분지에 봄이면 진달래, 가을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억새는 9월말 갈색 꽃을 피웠다가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은색과 흰색으로 변한다. 모두가 26만㎡ 광활한 분지를 가득 채운다. 석양에 붉게 물든 억새는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휘하 의병들의 맺힌 한이라는 표현도 있다. 봄, 가을 등산객들이 등산로마다 산길을 채우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최근에는 관룡사 쪽 옥천매표소에서 허준 드라마 세트장을 거쳐 올라오는 산악자전거 행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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