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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신중국사용설명서<18>]중국IT기업의 상징 ‘샤오미’(小米)스토리

기사승인 2019.12.01  19: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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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샤오미’(小米)는 신화인가 경제대국 중국을 언급하면서 ‘샤오미’와 ‘화웨이’(华为)를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가 가성비높은 휴대전화 배터리에 홀려 ‘대륙의 실수’운운하면서 평가절하했던 샤오미는 이제 5G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4K UHD TV, ‘나인봇’ 등 최신, 최첨단 제품을 판매하는 중국 IT산업의 아이콘이 됐다.
샤오미가 중국인의 사랑을 넘어 세계의 샤오미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마오쩌둥’(毛泽东)이 큰 도움을 줬다.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蔣介石)에 쫓겨 ‘대장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장정에서 살아남은 중국 공산당이 옌안(延安)에 머물러야했던 13년간의 ‘옌안시대‘에는 물자가 부족해서 마오 주석은 물론이고 모든 당 간부나 인민들이 하루에 3전의 소금과 5전의 기름을 배급받아서 좁쌀밥을 지어먹을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다. 1935년 3월 15일 인도에서 온 지원의료단에게 ‘좁쌀밥과 버섯과 죽순’으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우리는 좁쌀밥을 먹고 소총으로 투쟁을 하고 있지만,(吃小米拿步枪) 우리는 저 강대한 일본군과 맞서 능히 싸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좁쌀정신’이 바로 샤오미 창업정신으로 회자되면서 일약 신중국의 국민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중국내에서 샤오미는 온라인으로만 살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이름을 날렸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스마트폰이 세계 휴대폰시장을 장악하던 시절, 중국에서는 중국업체들이 ‘짝퉁’휴대폰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샤오미는 짝퉁이 난무하던 오프라인시장을 거부하고 온라인으로만 샤오미 휴대폰을 팔았다. 고유의 샤오미 운영체제(MIUI)를 개발하고 소비자들과 공유하면서 ‘샤오미생태계’ 구축에도 나섰다.
대성공이었다. 샤오미는 그 때부터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전동 킥보드, 공기청정기, 전기포트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 유통혁명에 나섰다. 애플워치와 갤럭시워치 등 웨어러블(손목착용형) 기기가 인기를 끌자 스마트밴드 ‘미밴드’를 내놓기도 했고 액션캠은 물론 TV시장에도 진출, 중국 TV시장의 21%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샤오미는 이 모든 제품을 직접 제조하는 생산공장이 없다. 샤오미는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업체와 협력한다. 스스로 마련한 품질표준을 통과한 제품에 ‘샤오미’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이 ‘샤오미생태계’에 들어있는 기업이 270여개에 이른다.
화웨이와 오포, 비보 등 경쟁업체들의 도약으로 온라인판매만으로 수성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치자 샤오미는 과감하게 오프라인 판매망 구축에도 나섰다. ‘미’(MI)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샤오미 매장’(小米之家)을 1,000개까지 늘렸다.
이제 샤오미는 휴대폰과 잡다한 가전제품 회사가 아니라 AI와 사물인터넷 전문기업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샤오미생태계’는 사물인터넷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샤오미 창립자이자 현 CEO인 레이쥔(雷军)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올 초 베이징에서 차기 전략발표회를 갖고 “이제 ‘AIot(AI+Iot)’ 시대다. 샤오미는 AI(인공지능) 기반의 사물인터넷(Iot) 생태계 개발에 5년간 100억 위안(약 1조7000억 원)을 쏟아붓겠다.” 고 공언했다.
전 세계가 샤오미에 눈길을 돌리고 박수를 보낸 것은 중국제품은 싸구려로, 품질이 나쁘다는 인식을 철저하게 깼기 때문이다. 중국제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깬 샤오미 휴대전화 충전 배터리는 ‘품질은 최고인데 가격은 기존제품의 1/3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성비갑’인 샤오미를 만나고서 중국산이라는 이유로 중국제품을 사지 않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샤오미의 전략은 통했다. 이익을 최소화해서 시장을 장악,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을 넓혀간다는 것이다.
창업자 레이쥔의 생각이었다.
물론 샤오미의 중국내 휴대전화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화웨이 등 경쟁업체의 성장 때문이다. 올 들어(2019년) 3분기 중국시장에서의 스마트폰 사업매출이 8% 감소하는 빨간 불이 켜지기도 했다.
CEO 레이쥔은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1969년생인 그는 후베이성에서 태어나 우한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산써(三色)라는 프로그램개발업체를 창업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중견 소프트웨어업체인 ‘킹소프트’에 입사, 6년 만에 대표자리에 까지 올랐으나 사임하고 IT시장의 엔젤투자자로도 활동하면서 IT산업의 미래를 꿰뚫게 된 것이다.
2010년 레이쥔은 7명의 투자자와 함께 샤오미를 공동창업, 10년이 채되지 않아 샤오미를 중국 IT기업의 대표주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샤오미의 도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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