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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슬픈 사연 간직한 김천 방초정 문화재 가치 탁월 국가 문화재 지정

기사승인 2019.11.27  1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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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 수양버들 조화 이룬 한 폭의 그림같은 정자

   
▲ 보물로 지정된 방초정
   
▲ 절부 최시를 기린정려각
   
▲ 최씨담과 수백년된 배롱나무
   
▲ 정려각앞 바위
   
▲ 방초정내 목각 현판
-사각형 연못 못안 좌우 작은섬 인접 부부애 형상
-김천시, 국가지정문화재 25점, 경북도 지정문화재 42점 등 총 67점의 문화재 보유

최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김천 구성면 방초정은 정자와 연못, 수백 년된 배롱나무 등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김천 방초정은 김천 시내에서 황악산 바람재를 넘어 공자동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감천에 못 미쳐 오른쪽에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 2층 누각이 자리하고 있는데 방초정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다락 형태로 김천을 대표하는 정자다.
김천 방초정은 연안이씨(정양공) 집성촌인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로 1625년(인조3)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호(號)를 따 건립한 정자로 방초정이라 했다. 최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김천 구성면 방초정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소개한다.

◇지조지킨 슬픈사연 담긴 '최씨 담(潭)'

방초정 앞 연못인 최씨담에는 슬픈 전설도 간직하고있다.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주역의 원리를 형상화한 전형적인 한국의 정원 모습을 하고 있다. 못 이름을 최씨 담이라 부른다.

최씨 담에는 정절을 지킨 여인의 애절한 사연도 담고있다. 방초 이정복의 처 최씨는 17살에 시집온 화순 최씨 가문 처녀로 1년간의 꿈같은 신혼 생활을 마치고 시댁으로 가는 신행길을 앞두고 있었다. 시댁에서도 인편을 통해 전쟁이 나 신행길이 위험하니 그냥 친정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친정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시집가면 출가외인 이란 양방가문 풍습으로 집안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것. 나이 어린 최씨 부인도 며느리로서 도리를 따르기로 작심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수없어 죽더라도 시댁에 가서 죽겠다며 몸종과 함께 신행길을 재촉했다. 어린나이 최씨 부인은 몸을 숨겨가며 40여 리 길을 걸어 마침내 시댁 마을을 눈앞에 두게 된다.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때 때마침 들어닥친 왜병들과 마주친다. 뒤쫓아 오는 왜병들에게 잡혀 능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최씨 부인은 마을 앞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부인을 따르던 몸종 석이도 주인을 구하려고 뒤따라 연못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사랑하는 신부를 졸지에 잃은 신랑은 부인을 잊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웅덩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못 옆에 정자를 지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부부의 인연을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원했다. 그때 부인을 그리워하며 지은 정자가 방초정(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이란 구전도 전해온다.

◇재혼한 이정복 부인께 미안함 표시로 웅덩이 넓혀

이정복이 부인을 잃고 애를 끊이다 후사를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떠밀려 재혼을 하게 되자 부인이 투신한 웅덩이를 넓혀 최씨 담이라 해 부인에 대한 미안함을 달랬다.

방초정 옆에는 최씨 부인의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지역 유림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웅덩이에 목숨을 던진 최씨 부인의 열행을 조정에 상소하자 인조 임금이 어필 정려문을 내렸다.
정판과 비석에는 '절부 부호군 이정복 처 증숙부인 화순최씨지려'(節婦 副護軍 李廷馥 妻 贈 淑夫人和順崔氏之閭)라고 적혀있다.

◇노비도 주인 상전 따라 투신

최씨 정려각 옆에는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婢)라는 작은 비석이 있다. 1975년 방초정 앞 연못인 최씨 담 준설 공사를 하던 중 이 비석이 발견돼 주민들이 이곳에 세워 놓았다.

이는 전설로만 전해졌던 몸종 석이가 상전이었던 최씨 부인을 구하기 위해 웅덩이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됐다. 주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노비의 충성심에 감복한 연안 이씨 문중에서 비석까지 만들었으나 당시에는 반상의 신분이 엄격했기에 사정상 비석을 세우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 주었던 것이다.

이런 석이의 비석은 380년 세월이 지난뒤 마을사람들에 의해 주인인 최씨 부인 정려각 옆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슬픈 전설 속에서도 방초정 앞의 네모난 연못은 운치가 그만이다. 연못가에 아름드리 왕버들과 배롱나무는 수백년 세월을 자랑한다. 네모난 못 안에는 좌우로 작은 섬이 이웃해 마치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방초정 원터마을 대표적 양반촌

방초정이 있는 원터마을은 김천의 대표적인 양반촌이다. 연안 이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연안 이씨로 예나 지금이나 전형적인 집성촌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1625년에 세워진 방초정은 손자인 이해가 1689년 중수하고 1727년 한 차례 보수했다. 1736년 큰 홍수로 정자가 유실되자 1788년 후손인 이의조가 수해로부터 안전하도록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방초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 상좌원리에는 또 다른 정자가 하나 있다. 이곳은 정작 '정자' 보다는 정자를 끼고 있는 둘레 풍경이 매우 멋스러운 곳이다. 연안 이씨, 초당 장원 선생이 글을 읽고 즐겨 머물렀던 곳이라는데,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져 있고 바위마다 글자가 새겨있다.

◇문화적 가치 뛰어난 방초전 국가 문화재 지정 손색없어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2층 누각 중앙에 1칸 크기의 온돌방으로 중앙의 온돌방 사면은 모두 창호를 바른 분합문으로 구성돼 있다. 건축 수법이 대체로 조선후기 양식으로 1788년 정자가 중건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체 보존상태도 양호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방초정 앞 ‘최씨 담’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지당 중 방지쌍원도의 전형을 간직한 유일한 정원 하수구로 마을 오·폐수를 계절의 변화와 기능의 요구에 맞게 마루와 방을 통합, 분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현대식 정화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방초정 앞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갖춘 ‘최씨 담’이 있어 마을과 감천 사이의 마을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하는 수질 정화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김천시는 지난 7월 김천의 직지사 ‘괘불도(보물 2026호)’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된 후 이번 방초정이 보물로 지정돼 김천시는 국가지정문화재 25점과 경북도 지정문화재 42점 등 총 67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김천금릉빗내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 승격 이후 또 다시 방초정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돼 문화재 활용을 통한 관광수요 창출및 김천시가 관광문화 유산 관광도시오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남보수 기자 bosu88@hanmail.net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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