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도로변에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기념식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농업인의 날은 농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정부에서 정한 법정기념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는 나는 관심이 없다. 현수막을 보고서야 이런 날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 혼자만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농업 자체에는 관심이 많다. 농산물 가격이나 개방문제, 농가의 수입이나 식량안보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특히 농산물 수요와 공급이 맞지않아 풍년이 들어도 가격폭락으로 농민이 피해를 입는 현상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농업인의 날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다. 농민이 아니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11월 11일을 다른 날로 기억하고 있다. 빼빼로데이다. 이날에 1이라는 숫자가 4개 들어가기 때문에 1을 닮은 과자 빼빼로를 빗대어 생겨났다. 공식적인 기념일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에겐 훨씬 익숙하다. 이들은 빼빼로를 파는 상인도 아니고 즐겨먹는 사람도 아니다. 과자의 품질이나 제조회사의 영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농업인의 날보다 빼빼로데이가 익숙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농업인의 날은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기념식을 하지만 홍보가 되지 않아 일반인은 이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빼빼로데이에는 많은 가게에서 특별판촉 행사를 한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는 가지는 않지만 지나가며 부담없이 보고 참여한다.
나도 빼빼로를 잘 먹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많이 듣던 말이라서 익숙하다. 빼빼로가 모든 국민이 즐기는 대표적인 먹거리가 아니고 우리 생활과 관련도 없지만 그렇다고 거부감도 없다.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수많은 기념일들이 있다. 대부분의 기념일은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날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날이다. 자신과 관련없는 수많은 공식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다. 사람마다 생일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억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법정기념일처럼 근거가 있거나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는 날도 있지만 비공식 기념일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빼빼로데이 같은 날은 숫자나 글자의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났는데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된다. 다만 대학입학 수능일과 가깝기 때문에 초콜렛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빼빼로의 판매를 늘여주는 효과는 있다.

옛날에 빼빼로데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말인줄 알았다. 그리고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에 좋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광고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날이 유행하게 되면 빼빼로가 하나의 제품을 넘어 일반명사가 될 정도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확인해보니 회사에서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여중생들끼리 빼빼로처럼 빼빼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주고받은 것이 유행하면서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비록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말이 아니었지만 젊은 학생들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같은 사람도 빼빼로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상술이긴 하지만 젊은 층의 취향에 공감하려는 접근방법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빼빼로데이가 유행하자 비슷한 날들을 만들었는데 삼겹살데이, 국수데이 같은 날이다. 그러나 빼빼로데이 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억지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공식적’ 보다 ‘비공식적’이 훨씬 일반적인 경우는 많이 있다. 보다 더 익숙하거나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논리적이지 않지만 친근하고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이름의 발음과 비슷한 동물을 별명으로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연관이 없어도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결국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중요한 것 같다.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인식되면 공감도 늘어날 것 같다. 경상도 말의 어미에 “~이다”는 뜻으로 “~ 데이” 있다. 요즘 이를 이용하여 00합시데이(day)를 붙이는 시리즈가 많다. 비록 자연스럽지는 않는 탄생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경상도 사람이라 공감이 되는 말이다.

요즘 젊은이와 대화를 하면서 나의 존재가 그들의 세계에는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들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쉽지는 않다. 세대차가 있어서겠지만 공식적, 논리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성향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혹시 빼빼로데이 같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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