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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향으로

기사승인 2019.09.10  19: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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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추석명절이 다가온다. 명절을 맞이하면 고향은 늘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고향이 있다. 먼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육신의 고향이다. 여기엔 부모가 있고 형제들과 친지들 그리고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고향 친구들이 있다. 명절이 되면 주마등같이 부모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립고 고향 산천이 그립다.

그리고 우리에겐 또 다른 한 가지 고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죽어서 가는 고향이다. 즉 천국이다. 우리 인생의 고향은 흙이다. 인간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 육신은 왔던 본래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영혼은 영원한 하늘나라인 천국으로 돌아간다.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가야하는 고향은 천국이다. 육신의 고향은 잠시 머무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사는 본향이다. 우리는 늘 그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 그곳은 슬픔도 눈물도 아픔도 없는 기쁨의 나라다. 더 이상 고생도 없고 괴로워 할 일도 없는 나라다.

성경은 인생에 대해서 세 가지 정의를 내린다.

첫째, 나그네 같은 인생이다. 인생은 모두가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안개와 같은 인생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는 불확실한 것이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안개는 태양이 떠오르면 없어진다. 바람이 불면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안개다.

인생은 눈 깜짝 할 사이다. 인생은 순간이다. 인생은 짧다. 그런데 사람들은 몇 천 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마치 자기 인생이 영원한 것처럼… 그런 것 같다. 인생은 잠시 소풍 나온 시간이다. 안개 같은 인생, 찰나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돈이나 명예나 쾌락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로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이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다.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심각하게 살지 마라.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인간은 반드시 끝이 있다. 유한한 존재, 한계를 지닌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마지막이 있음을 알고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민족 저항 시인이었던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에서 고향을 이렇게 노래한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중략
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白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그런데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절규가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의 고향은 고향의 상실로 인한 인간의 슬픔을 노래한다.

다시 찾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그로 인한 현실의 비애를 노래한다. 변하지 않은 자연의 모습과는 달리 고향의 모습을 상실해 버린 시인이 느끼는 고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 치하의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고향의 상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은 서정적이고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 있던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유토피아적인 이상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등과 고뇌가 녹아 있다. 이러한 시적 자아의 성찰 의지가 ‘나’, ‘백골’,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 대립하다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드러나 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또 다른 고향은 무엇일까? 지금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고향이 침탈을 당하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상실감이다. 추석명절이다. 어린 시절의 고향을 상실한 비애와 허망함이 몰려오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고향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고향으로 달려간다.

나는 멀리 떠나 왔지만, 한 번도 고향을 버린 적이 없다, 그것은 중독성이 있는 그리움이었다. 나는 가끔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를 맡으면 그리움의 병으로 며칠간 몸살을 앓는다. 풀냄새, 흙냄새, 청국장 같은 고향의 냄새가 벌써부터 그립다. 깊어가는 가을밤 저 보름달에 고향이 보인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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