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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빈 방

기사승인 2019.08.13  19: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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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주 수필가

   
빈방이 늘고 있다. 들여다본 골목마다 덜 차 있다. 대문 앞에 붙은 쪽지들이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허기진 귀를 세운다. 한 때는 경쟁에 허우적대던 누군가의 고단함을 누이던 보금자리였다. 해가지면, 따뜻한 불빛이 먼저 앞치마에 손 닦고 마중 나오던 곳이었다. 사람의 웃음기와 사람의 울음기가 공존했던 곳이고, 삶의 온기로 진정한 채움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동네가 골다공증 앓듯 노쇠해지고 있다. 들이지 못한 빈방이 늘어날수록 뼈 속에 숭숭 구멍이 뚫려 얇아지고 약해져가고 있다. 영양분이 빠져나가 쪼그라든 근육은 탄력마저 잃었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냄새 사라져 돌아오지 않으니 서걱서걱 푸석거린다. 작은 바람에도 적막한 외로움에 바스러질까 흔들린다. 외등하나 없는 도시의 난바다다. 아무래도 ‘비어 있음’의 다른 말은 결핍이겠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오래된 동네다. 처음 도시가 생겨나면서 도요새와 개개비가 살던 갈대밭에 만들어진 동네다. 차츰, 큰 도로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러나 조금만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시대를 지나며 개조에 개조를 거듭한 주택들이 대부분이다. 해거름 산책길, 서서히 그늘처럼 내려앉는 동네의 쇠락하는 면면을 본다. 자주 얼굴 못 보는 이웃이지만 어깨동무 하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처마들이 정겹다. 묵은 동네답게 굴곡진 골목길이 집과 집을 이어주고 사람냄새 진동하는 안온함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어디 그 뿐인가. 도시의 터줏대감답게 임차료는 좀 나가도 교통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 찾는 이들이 많으니 동네는 끊임없이 방을 만들고 담을 늘려 확장해 갔다. 새로 짓기 보다는 개조를 하거나 확장을 거듭하다 보니 변형된 모양의 요상한 집들도 생겨났다.
어느 순간, 담장너머 보이던 우아한 배롱나무 예쁜 꽃들이 사라졌다. 담을 넘던 투박한 호박꽃이 열매가 맺히기도 전에 줄기를 거두어버렸다. 간혹, 마당 넓은 집에 핀 짙푸르고 둥글둥글한 연잎들 사이로 하얀 연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골목은 밝고 흥청거렸다. 상가 점포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고 줄을 서 기다리던 그때, 분명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한 수 위였다. 덩달아 종사하는 이들이 아름아름 동네의 방이란 방은 죄다 채워버렸으니.
그랬던 동네가 온기를 잃고 시름에 잠겼다. 한 때의 영광을 뒤로하고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동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부분 ‘의도적 비움’ 은 아니라고 했다. 도시의 모퉁이로 옮겨가거나, 가장자리로 쫓겨나거나, 멀리 밀려난 이들의 빈방이라고 했다. 장사가 예전만 못하니 전세금을 줄여 떠나고, 높아진 월세 감당을 못해 싼 변두리로 이동했다고 한다. 대문마다 하얀 종이가 너덜너덜 해진다는 것은 아직 사람을 들이지 못했다는 뚜렷한 증거다. 전봇대 사정도 비슷하다. 일 년 내도록 붙어있던 낡은 종이 위로 덧붙여진 종이들로 뭉툭하니 허리만 굵어졌다. 비에 젖거나 바람에 찢어져 오가는 발길에 차인다. 빈방처럼 허허롭게 비우고 돌아서야 했던 타인들의 결핍된 구원의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걸까. 종이는 발길에 감겨 떨어질 줄 모른다. 뒹구는 종이 한 장에 뭔가 억울하고 비통한 생각마저 드는 건 왜일까.
지난 초겨울이던가. 노트 한 장을 쭉 찢어 또박또박 월세 방을 알리는 저 주인을 만난 것은.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점포에 젊은 남녀가 부지런히 자재를 사다 나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손수 가게를 꾸미는 중이라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찻집을 꾸미고 있으니 꼭 이용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곧, 식을 올릴 예비부부인 그들은 간소하게 식을 올리는 대신, 그 자금으로 자신들의 가게를 갖는 중이라고 부풀어 있었다. 그들의 정성만큼이나 아담하고 정갈하게 탄생한 가게는 차 맛이 좋았다. 친절하고 푸짐하다는 입소문도 나면서 근동에 인기 있는 카페로 자리매김 했다.
비록, 골목 허름한 단칸방에서 신혼을 보내면서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곧 형편이 나아져 아이도 가질 것이라던 그들에게 불안이 엄습해 왔다. 우후준순 근처에 생겨나는 또 다른 카페들 때문이었다. 장사가 좀 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너도 나도 근처에 카페를 열었던 것이었다.
매출은 곤두박질하고 급기야 세 부담이 되었던 그들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타지방으로 떠났다. 남편이 카페 창고 한 편에 지내기로 하면서 짧았던 신혼의 방은 전봇대에 나 붙었다. 어쩌면 카페마저 내 놓아야 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는 젊은 그들이 마주하는 결핍. 그러고 보면 삶이란 분명 겪는 사람의 것이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것은 아닌가 보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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