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지진도시 오명 딛고 ‘아트 바젤’ 문화도시로 재탄생

▲ 스위스 아트바젤(ART BASEL) 전시 작품/박계현 제공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29분, 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는 서산터널을 지나서 육거리 방향으로 가다가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쾅!’ 소리와 거의 동시에 연이어 ‘우르르~ 콰광’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굉음과 더불어 내가 탄 차는 좌우상하로 요동을 쳤다. 그리고 전봇대와 길도 춤추듯 움직였다.
엄습해오는 공포를 누르고 육거리 근처에 있는 3층 화실에 들어서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쌓아둔 그림들, 석고, 병들이 엎어지고 깨지고, 건물은 금이 가고 엉망이 됐다.

몇 주 동안 같은 장소를 진원지로 하는 여진이 거의 매일 되풀이 됐다. 결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선암사, 송광사, 순천 낙안읍성을 거쳐 여수 밤바다를 보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켰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6,25 사변 때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포항은 2만 학도병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켜낸 도시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15일, 5.4 강도의 본진 이후 2018년 2월 11일, 설날을 5일 앞둔 새벽에 4.6 강도의 여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85회의 여진이 있었다. 겨울날 새벽에 방에서 자다가 맞이한 이 불청객의 꿀렁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018년 7월, 그동안 정부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미진한 가운데 포항시에서 준비한 지진조사단이 스위스 바젤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2019년 3월 20일 포항지진정부조사연구단(단장 이강근 대한지질학회장 서울대 교수)은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 실증연구 수행 중 지열정 굴착과 물 주입에 의한 영향이 누적돼 임계응력 상태에 있던 단층에서 촉발된 지진이다.”라고 밝혔다.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컨소시엄형태로 참가한 넥스지오의 지열발전소 사업은 500여m 간격으로 두 곳에 4,000m가 넘는 깊이로 구멍을 뚫어서 한 쪽으로 물을 주입하면 땅 속에서 뜨거워진 물이 다른 한 쪽으로 스팀이 되어 올라와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양 쪽의 구멍 사이에 있는 화강암층을 파쇄해서 물이 통과하게 해야 하는데 89 메가파스칼에 해당하는 수압을 가해서 단단한 화강암층을 파쇄하고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정도의 힘은 아파트 한쪽에서 물을 쏘면 다른 한쪽으로 구멍이 나는 정도라고 한다.
2017년 5.4의 강도에 해당하는 지진을 일으켰고 지역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며 아직까지도 이재민이 삶의 터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2006년 12월에 시추를 시작한 스위스 바젤의 지열발전소 사업이 시추 6일 만에 3.4 강도에 해당하는 지진을 유발시켜 피해가 발생되었고 3년간의 정밀 분석 끝에, 땅 속으로 구멍을 뚫고 뜨거워진 물을 뽑은 것이 지진의 원인이라고 밝히고 2009년 지열발전소에 대해 영구 폐쇄 조치를 취했다.

스위스 바젤은 지열발전소 사업으로 인한 지진 도시의 오명으로도 유명하지만 유발지진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책임감 있는 정부의 지휘 하에 잘 극복하였고 ‘아트 바젤’이라는 아트페어로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확고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프랑스 피악(FIAC), 시카고 아트페어와 더불어 스위스 아트바젤(ART BASEL)은 세계 3대 아트페어에 속한다. 아트바젤은 스위스에만 머물지 않고 마이애미 아트바젤쇼와 홍콩 아트바젤로 국제화했다. 우리한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술행사를 마이애미와 홍콩에 판매한 것이다.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국제미술시장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 2002년부터는 마이애미비치에서, 지진 이후 2013년부터는 홍콩에서도 개최했는데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3월 홍콩의 콘라드 호텔(Conrad)에서 열린 아카스(ACAS, Asia Contemporary Art Show)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홍콩으로 갔을 때 마침, 홍콩 컨벤션센터 1층과 3층에서 ‘홍콩 아트바젤’이 열리는 시기라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300개가 넘는 부스에서 1,000여명이 넘는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이 다 모여 판매전시를 하는데 10평에서 15평 남짓한 부스 하나를 4일간 임대하는 비용이 장소에 따라 8,000만원에서 1억 2,000만원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300여개의 부스가격이 한 부스 당 평균 1억 원 정도 되니 총 300억 원 정도 된다. 작품 당 가격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되었다.

한참이나 줄을 섰다가 들어가니 일단 입구에서부터 만만치 않았다. 일본 작가 ‘야요이’의 작품들로 시작해서 그 옆에는 ‘앤디워홀’의 작품인 ‘마릴린먼로’를 시리즈로 하는 판화작품들과 전 세계 작가들의 입체, 평면, 설치 작품 등 수없이 다양하고 빡빡한 내공의 밀도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었다. 지금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이슈가 되고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들이 상당수 모여 있었다. 우리나라의 갤러리들은 미니멀아트를 위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다.
아주 빠르게 관람했다고 생각했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좀 일찍 가서 그렇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1층 입구에서부터 몇 줄로 줄지어선 관람객들이 바깥의 도로에까지 500m가 넘게 이어져 있었다. 옆에서 떠드는 말을 들어보니 중국, 일본, 동남아,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황인 다양한 세계인이 다 모여 있었다. 각국의 방송 취재 열기 또한 시끌벅적했다.

스위스 바젤은 현명한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음악회처럼 미술문화행사를 수출한 것이다. 미술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박람회처럼 장소만 있으면 되는 행사로 세계 유명 도시로 이동하는 미술행사, ‘아트바젤’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진도시 바젤은 세계의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도시로 ‘아트바젤’은 그 대명사가 되었다.

‘홍콩 아트바젤’을 관람하고 2년 반 뒤에 내가 사는 포항에 5.4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아직도 포항에는 지진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다. 내 화실에는 금가고 깨진 트로피가 그대로 있다. 20여 년 전 처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한 작품은 넘어질 때 구멍이 났다. 신혼 때 한복 입은 아내를 모델로 그린 작품인데 아쉬움만 남아있다. 예술 작품은 보상 기준도 애매해서 피해보상 신청도 못했다. 많은 여진 중에 두 번째로 큰 4.6 강도의 지진이 발생할 때는 추운 날 새벽이었다. 심한 흔들림에 놀란 이후에 ‘트라우마’라는 말을 이해했다. 진원지에서 6km 정도 떨어져서 진동에 거의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실제는 훨씬 더 큰 여파가 있었다. 두 차례의 큰 지진과 수많은 여진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화가 박계현

스위스 바젤을 보면 두 가지의 훌륭한 점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열발전소 공사로 인한 3.4 지진이 발생했을 때 즉각 공사를 멈추고 정밀조사를 한 후에 정부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조치를 한 것이고 두 번째는 ‘아트바젤’이라는 미술시장을 더욱더 국제화 시켜 바젤과 마이애미에서 열던 행사를 아시아의 홍콩으로 확대하면서 전 세계 대륙에 ‘문화도시 바젤’을 인식시켜 품격 있는 도시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스위스를 얘기할 때 알프스 다음으로 바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아트바젤’의 힘이다.
인구 50만의 환동해 중심도시 포항에도 국제적인 아트페어가 하나 제대로 자리 잡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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