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캘리포니아에 살 때 메마른 기후 탓에 주변에 산불이 자주 났다. 먼 곳에서 산불이 나더라도 넓은 지역에 걸쳐 몇 날을 두고 타기에 하늘 한편이 검은색으로 변해있는 경우가 흔했다. 몇 년에 한번쯤은 마을 인근에서도 산불이 나는데, 산기슭에 위치한 집주인들은 피난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실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15년 전쯤 필자가 겪었던 산불은 꽤 먼 곳에서 발생한 것인데도 하루 사이에 우리 동네 근처까지 태우고 있었고 불씨가 100미터 넓이의 ‘후리웨이’를 쉽게 넘어가며 확산되고 있었다.

산불이 발생하면 숲이 타고 숲의 수많은 기능이 사라지면서 사람과 생태계에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산불이 발생하면 수십 수백 년 된 수목들이 사라지고 동물·곤충생태계가 파괴된다. 화재 시 타다 남은 재들이 날아와 호흡기에 악영향을 주고, 그 후 우기가 되면 타버린 나뭇가지와 재들이 골짜기에 퇴적되어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살던 ‘벌두고-몬트로스’지역에도 1956년에 큰 산불이 나서 그 이듬해 우기 시 동네 골짜기가 범람하여 수백채의 집들이 진흙홍수에 휩쓸려가고 수십 명의 마을사람들이 실종되었었음을 오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2018년에 발생한 ‘베벌리힐스’ 인근의 대형산불은 넓은 산야와 부촌의 수백만 달러짜리 집들을 수백 채 태우는 등 피해가 컸었는데 인근 빈터 무허가텐트촌에서 음식조리시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다.

요즈음 우리 한국에도 산불이 많이 난다. 처음 포항 남쪽 산야에서 산불이 났다고 하더니 얼마 후에는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시 인근에 큰 산불이 나서 여의도 면적의 112배(1,757㏊)가 불탔고, 피해시설이 3,400곳이며 이재민은 1,160명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해안지역에는 이러한 광대한 면적의 임야를 불태운 산불이 여러 차례 났었는데, 현장사진을 보니 소나무 군락지의 산불이 바람을 타고 폭탄 터지듯 공중 높이 치솟고 있었다. 불붙은 솔방울이며 작은 불씨들이 수백 미터를 날아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지역 산불의 특징을 수십m 높이의 '불기둥'과 하늘을 나는 '도깨비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고 숨은 '잔불'로 요약하고 있다. 도깨비불이란 불씨가 바람 등을 타고 날아다니는 비화현상을 말한다. 어떤 주민은 "불기둥이 여성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듯이 춤을 추며 이 산 저 산의 나무들에 들러붙었다"고 말했다. 잔불은 특히 소나무 숲의 경우에 발생하는데 불이 완전히 진화된 듯 보여도 바람이 불면 다시 불씨가 살아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산불은 벌거숭이산에 사방공사와 식목을 하고 40-50년간 울창하게 키워낸 소나무 숲을 일시에 파괴시킨다. 수많은 소방대원들과 소방차가 동원되고, 산불진화용 헬리콥터가 동원되는 것이 요즈음의 산불진화 모습이지만, 진화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삼척의 큰 산불도 진화되고 나서 며칠 후 비가 내렸기 망정이지 그 불씨가 언제 살아나 또 다른 광활한 산야를 태워버릴지 알 수 없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의하면 토양유출은 산불발생 후 2년까지는 매우 컸으나 이후 급격히 감소해 3∼5년 후에는 산불 이전과 유사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많은 복구 작업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산림생태계가 산불이전수준까지 되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어류 3년, 수서무척추동물 9년, 그리고 개미류 13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숲의 외형은 산불 후 20년 이상 경과해야 이전 70~80% 수준으로 회복되고 하층식생도 풍부해질 것이며, 이에 따라 조류도 비슷한 시기에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무들의 경우 산불 이전과 유사한 수준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산림동물의 경우, 숲이 산불 이전과 유사한 형태로 구성되어야 소형·대형포유류가 주변의 비피해지로부터 유입되기 때문에 3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산림토양의 경우에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 까닭은 오랜 기간에 걸친 숲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토양생물의 활동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불의 원인은 다양한데, 쓰레기 태우다가, 담뱃불 잔재로 인해, 혹은 캠핑객의 실수로 발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 일부러 불을 내기도 했고, 송전선로상의 변압기가 과 부하되거나 산짐승들이 이를 건드려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벼락이 떨어져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에 대한 조심과 대비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가 거주하는 포항시를 방문하는 이들이 자주 묻는 말은 왜 도심과 교외의 산들이 벌거숭이냐는 것이다. 당연히 여러 차례 산불의 영향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 필자가 생각해도 왜 이삼십년 세월이 흘러도 이 산불피해지는 수목이 제대로 자라나지 않고 벌거숭이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토양 탓이라서 잘 자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복구용 수종선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문가들은 산불피해 이후는 기초적인 작업 후 자연에 맡기는 것이 정석이라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도심 인근 벌거벗은 산들을 수 십년 간 방치하는 것은 미관상으로도 산사태 예방 면에서도 문제없다고 할 수는 없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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