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대 해병대전우회(포항영일지역) 초대 회장 예비역 병장

1996년 6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독대할 기회가 있어, 평소 친분이 있었던 전도봉 당시 해병대사령관을 사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의 목적은 우리 해병대의 당면 숙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전 논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평소에 나도 해군 예하에서 독립된 인사권·작전권·재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해병대의 현실에 우려를 갖고 있던 바, 서로 해병대의 현실에 관한 많은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뒤 예정대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대통령은 장로의 신분으로 외부교회의 예배에 출석하기에는 경호상의 불편함 때문에 주일이 되면 목사님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 날은 내가 출석하고 있던 포항중앙교회의 서임중 목사님이 초청을 받으셨고, 나는 기도순서를 맡아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한 시간여의 예배가 모두 끝나고 기다리던 티타임시간이 되었다.
나는 대뜸 “장로님! 해병대에 대한 건의를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저도 6.25시절 해병대의 활약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해병대는 우리나라의 보배중의 보배지요”라고 칭찬하면서 무엇을 건의하느냐고 캐묻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현재 해병대는 해군 예하에 있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독립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과감히 본론을 말하였다.
이에 대통령의 반응은 고개를 갸우뚱하는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국방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 아닌가요?”하는 말이었다.
이에 나는 “국방예산증액을 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체제에서도 가능합니다.”라고 답하며, 이미 9년전(1987년)에 해병대사령부가 부활되어 있으므로 인사·작전·군수분야의 제도상의 조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적극 설명하였다.
거기에 부가하여 해병공수의 부활을 건의하면서 ‘귀신잡는 해병’, 삼군에 앞장서는 우리 해병대의 용감함과 충성심에 대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토로하였다.

모든 나의 얘기를 들은 이후 대통령은 웃으면서 “연구해 보겠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날 돌아오는 차안에서 전도봉 해병대사령관의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국방부장관이 바로 만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날 이렇게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해군에서 해병대로 이양된 몇가지 제도적 개선과 5공화국 시절 폐지되었던 해병대 공수부대의 부활등이 감히 나의 건의 덕분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당시 국군통수권자와의 만남의 기회를 통해 혼신의 열정을 다해 우리 해병대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음은 23년이 지난 오늘도 기억이 생생하며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문민대통령에 비육군출신 국방부장관, 비해사출신 해병대사령관이라는 조건이 해병대독립의 기틀이 된 것 같고, 나도 거기에 새털만한 기여를 한 것 같아 나름 자부심을 느낀다.
예비역병장에 불과한 나지만, 해병대예비역이라는 긍지를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
내 인생사의 에피소드라고 치부할수도 있는 일이지만, 창설 70주년을 맟는 우리 해병대를 생각하며 그동안 포항지역에서 전국 최초의 해병대전우회 창립을 도왔던 전우회원들을 기리면서 졸필을 남기는 바이다.
다시 한 번 해병대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고 김영삼 대통령을 추모하며, 당시 도움을 주신 국방부 관계자들과 역대 최고의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께도 감사드리는 바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