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두어 해 전에 신문을 보다가 ‘오늘의 운세’ 난에서 잊혀 지지 않는 구절이 있어서 수첩에 메모를 해두었다. 오늘 수첩을 뒤적이다가 마침 그 내용을 발견하고서는, 아하 그때 이런 글을 적어두었던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읽어보니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과거의 고초를 한탄 말고 현실에 충실 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지난날을 거울삼아 더욱 더 충실히 산다면 세상 무엇이 또 부러울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
"매사에 힘들게 생각하면 한없이 힘든 것이고 쉽게 생각하면 쉬운 것이다. 마음가짐을 편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떠한 일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니 마음 굳게 먹고 실천에 옮기도록하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가족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라고들 한다. 물리학에서는 외부의 힘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모멘텀이라 한다. 최근 기업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용어로써 기업성장이 내부에서 저절로 이뤄짐을 뜻한다. 가족도 외부의 힘없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국가, 기업, 가정도 마찬가지로 지나간 고초를 한탄하기 보다는 현실에 충실해야 앞날의 번영도 있을 것이다.

어제는 절친한 형과 만나서 술집을 두루 주유하면서 기분 좋게 마시고 몇 년 만에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오전 내내 술에 취해 자다가 비몽사몽간 일어나서 아침과 점심을 합한 아점을 먹는데 평소 늦게 들어가도 모른 척하던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칼을 빼내 들었다.

“자식은 커 가는데 당신은 지천명이 넘도록 벌어 놓은 돈도 없으면서 건강마저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떡할 것이냐?”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육신뿐인데 여태까지 건강에 신경 쓰이지 않게 하더니 가로 늦게 신경 쓰이게 한다면서 칼을 강하게 휘두르는 바람에 덜 깬 술이 확 깼다. 입이 있어도 대꾸할 말이 없어서 동태국과 밥만 꾸역꾸역 삼키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은 좋을 때보다 힘들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힘들 때 언제나 편히 기댈 수 있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을 수 있는 안식처다.

또한 가족이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모멘텀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살다보면 정말 어려울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진정 어려울 때 진짜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바로 가족인 것이다. 김사인의 시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쉽게 대하고, 함부로 말하고 그래서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이지만 말없이 서로 이해하고 그냥 있는 것이 가족이 아니던가.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든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정말 고마운 것이다// -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전문

남자는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죽을 때까지 철부지란 말이 있다. 나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김사인의 시에서처럼 비록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철이든 낙엽 하나, 아내가 곁에 있어서 정말 고맙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소중함을 못 느끼는 공기처럼 나도 그렇게 무심하게 지내온 것은 아닌지 오랜만에 가만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가족의 존재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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