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실바노)계산성당 주임신부

문제가 너무 쉬우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서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마태 21,28-32. 복음에서 들려주는 두 아들에 대한 비유는 바로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아들인가에 대한 물음은 사실 뻔한 답이 나오는 비유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냥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비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죄 많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세리와 창녀들이 의로움을 자처하는 율법학자나 수석사제들, 원로들, 바리사이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면….

그러면 의롭게 살지 말고 적당히 죄를 지으면서 살라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비유말씀의 이야기를 잘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큰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 들어갈 것이다. 처음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듯 했지만 자신의 삶에 부족함을 뉘우치고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됨으로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세리와 창녀들로 표현되는 사람! 자신의 삶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회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둘째 아들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모습에 내 삶이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내 편의대로만 살고 내 맘 편한 대로 해석하고 살아간다면, 나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바라보고 산다면 둘째아들처럼 말은 해놓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율법학자들/바리사이/대사제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두고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다. 겉은 멀쩡하고 화려해 보여도 속은 썩어있는 삶을 심하게 질책하셨다. 내 삶이 그렇게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예」라고 대답하고 실천해야 할 삶의 모습은 「사랑하는 삶」일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하라!」고 하셨다. - 최후의 만찬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다. - 고린2

같은 생각을 만들어가고, 같은 사랑을 나누고, 같은 마음으로 힘을 표현해내는 것이 사랑이다. 생각에서, 마음에서, 말로 표현되는 신앙을 사랑으로 사는 데 앞장서자.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말자. 생각으로만 그렇다고 수긍하지 말자.

생각의 옳음을, 마음에 담겨진 삶을 실천하는 삶으로 바꾸어갈 수 있을 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가는 아들의 삶이 내 삶이 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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