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 편집인·부사장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고리로 뜨거웠던 ‘평창 외교전’이 25일 폐회식을 전후로 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보냈고,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파견하면서 평창이 남·북·미 고위급 외교의 장이 됐다.

개막식 외교전에 이어 폐막식의 피날레 외교전을 통해 북·미관계에 새로운 변곡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이다.

이번 북·미 고위급 대표단 파견은 외견상으로 북·미대화 측면의 직접적 함의는 커 보이지 않는다.

대미 관계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크다.

그러나 북·미 양측 정상이 이번 폐회식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낸 것 자체는 고도의 외교전을 의미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평양과 워싱턴의 기류는 평창을 계기로 유동성이 높아졌다.

북미 양측은 서로를 향해 복잡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 시그널의 함의는 대화 재개로 연결된다.

양측의 시그널이 복잡하고 때론 강경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화재개란 원칙론을 담보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물밑중재 노력이 역할을 발휘할 때다.

비핵화라는 본질적 이슈를 놓고 북·미간에 대화할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양측의 여전한 입장이지만 여전히 대화를 전제로 한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북·미 양국 대표단이 폐회식을 계기로 문 대통령과 각각 면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원칙론을 재확인한 것 자체로만도 ‘중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의미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공세에서 한발짝 물러선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중매’ 역할을 해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을 연결고리로 한 북·미간 ‘간접대화’에서 확인된 상호간의 입장을 북·미 양측에 가감없이 전달하며 일정 부분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큰 틀의 교류와 협력 활성화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있는 북한에 대해 한·미가 비핵화란 궁극적인 목표를 어떤 식으로 도출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인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미대화의 ‘입구’를 놓고 양측의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유지함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및 고위급 대표단 파견 등은 핵 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핵을 지키려는 전술이고, 한국 정부를 그 목적에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없이는 외부세계와의 관계 개선이 불가능함을 천명하고 북측이 제안한 방북 정상회담의 실질성과가 보장 될 수 있을 때만이 만남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기(期) 남북 정상회담의 명암 및 득실의 교훈도 따져야 한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기간 전세계는 한반도에서도 ‘평화의 봄’이 올 수 있다는 다양한 시그널을 접했다.

스포츠 평화제전인 올림픽 자체가 공식 외교행사는 아니지만, 참석 정상을 위한 사전 리셉션과 개·폐회식은 간접적인 다자외교 무대인만큼 평창의 외교적 의미는 남다른 것이다.

어떻게든 한반도 문제의 출구를 모색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남쪽에 대화의 손길을 내밈으로써 국제적 고립·제재구도에서 탈피하려는 전략적 변화를 보여줬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 역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한 것만으로도 평창이 준 외교적 성과는 크다.

평창 이후의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남·북 정상회담 등 대형 어젠다를 추진해나가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역할이 그래서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외교는 전쟁중에 그 필요성이 배가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패권주의가 전쟁상황으로 치달았을 당시, 우리 외교의 실패가 역사에 어떻게 오점으로 남아 있는지를 명심해야 할 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숨 막히는 평창 외교전의 최후 승자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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