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여 남은 내년 전국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벌써부터 상대예상자들에 대한 비방이 일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행사장이나 길흉사를 찾아다 얼굴을 알린다.

때로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성당과 사찰, 교회를 돌아가며 회개와 기도, 108배를 하고, 등 돌린 민심을 다잡기 위해 3보 1배 퍼포먼스를 하고, 가는 곳마다 노인들에게 넙죽 큰 절을 한다.

이런 모습은 매스컴을 통해 철저히 이미지화되어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도 이미지가 넘쳐나고 있다.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이성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수단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를 동원해서 지지를 얻는 행위도 중요한 선거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정책과 정견 등 미래적 비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호소한다면 이미지 동원은 하등 흠잡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미지 범람은 정당이나 정치인의 능력과 과거 경력, 정책적 비전 등 합리적 선택 요소를 압도하고 있다. 그것은 망국적 병폐라고 하는 지역주의와 교묘하게 연결되기도 하고,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을 되살리는 퇴행주의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적으로 압축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아직까지도 정치·사회적 성장을 압축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세월은 그런 압축 성장을 위한 과정이었고 지금도 실천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의한 감성 정치의 범람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준수한 외모의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 된 데에는 경쟁자와의 TV 토론이 한 몫을 했다. 그는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서부 영화에서 총잡이의 대명사로 나오는 존 웨인이 실제로 총잡이일 수는 없다. 그는 그저 영화라는 이미지 수단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총잡이일 뿐이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를 실제 총잡이로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더 이상 그를 총잡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니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존 웨인을 현실에서도 총잡이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아직 어리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감성 정치, 이미지 정치 그 자체가 마냥 그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과 정견이 빠진 이미지 과잉은 유권자를 오도할 수 있다. 자칫하면 국민 전체가 서부 영화의 총잡이를 현실의 총잡이로 오인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가올 지방선거는 정치와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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