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상점가 대부분 문 닫고 경찰 경광등만 “번쩍 번적”

▲ 지진피해로 붕괴 위험이 우려되는 흥해읍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이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
“빨리 집에 갔으면…” 5일째 대피소 이재민들 지친 기색 역력

포항 강진 최대 피해지역인 흥해읍은 올 들어 최강 추위가 엄습한 19일 저녁 적막감만 감돌았다.

야광 점퍼를 입은 경찰들이 읍내 시가지 곳곳을 순찰하고 있으며 경찰 순찰차 및 소방차의 경광등만 번쩍였다.

소규모 식당과 수퍼 등 대부분 상점가는 오후 7시가 안 돼 모두 문을 닫았고, 그나마 문을 연 식당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두터운 방한복을 입은 채 근심 가득한 모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평소에도 24시간 영업중인 옥성리 해장국집 주인 이모(55·여)씨는 “크고작은 피해를 입은 대부분 식당이 아예 문을 닫거나 초저녁에 장사를 마치면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모두 근심이 그득하다”며 “대피소에 가지못한 채 집 주변에서 밤을 새우는 주민들도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대의 피해를 낸 대성아파트 인근에는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부터 가재도구를 꺼내는 주민들, 이를 싣고 안전지대로 출발하는 차량들이 붐볐다.

이 곳에서 만난 60대 주부는 “실내체육관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 수 없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무너져가는 집안에서 꼭 필요한 물품들만 꺼내왔다”면서 “우리 아파트는 철거할 것이라는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지 누가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울먹였다.

불이 켜진 대성아파트 인근 식자재도매상 안에서는 여전히 진열대 상품들이 지진 당시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상점 관계자는 “장사를 하려고 불을 켜놓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물품을 사려는 이들이 있어 문을 열어놓고 있다. 카드결제 시스템이 고장나 현금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미안해 했다.

5일째 흥해체육관에서 대피생활 중인 이모(77) 할머니는 19일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 잔뜩 움츠린 채 옷가지 등을 담은 가방을 들고 새로운 대피소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집에도 들어갈 수도 없고 언제까지 대피소를 전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면서 “목과 머리가 아프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사람 사는 게 비참하다”고 한숨 지었다.

흥해읍내에서 3km정도 떨어진 용전리와 용천리에서도 주택 벽체가 떨어져 나가고 담장이 무너져 있지만 복구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

이모(84) 할아버지는 “건물이 조금만 흔들려도 정신이 아찔하다. 집 벽체 곳곳에 금이 가 있지만 손쓸 방법이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대피소에 갈 수도 없어 불안하지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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