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석 포항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봄 날씨 답지 않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게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좋은 문화공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는 비록 늦은 봄과 여름사이지만 흔히 평론가들에게 가을의 작곡가란 별명이 붙은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이 연주된다.
브람스라는 작곡가는 총4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다른 작곡가에 비해 교향곡의 수가 4개밖에 되지 않지만 브람스의 교향곡은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명곡들로 이루어져있다. 과거에 포항시립교향악단에서 한두 번 정도 연주가 되었다.

브람스는 걸작이 굉장히 많은 작곡가인데 굉장히 신중하고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곡을 발표할 때는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하였다. 교향곡 제1번도 약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1876년 11월 4일 칼스루에서 초연했을 때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브람스는 고전주의의 완성자인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베토벤을 뛰어넘는 곡을 작곡하고 싶었고, 당시 교향곡 작곡가인 브루크너가 엄청난 스케일의 교향곡을 쓰고 발표할 때였다.
또한 당시의 음악계를 주름 잡고 있던 작곡가는 리하르트 바그너였다. 바그너의 엄청난 스케일의 오페라음악에 고전주의 음악들이 붕괴되고 있는 시점에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공존하는 시대로 만든 중요한 곡이라 할 수 있다.

브람스는 또한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짝사랑한 것으로 유명한데 브람스가 65세까지 클라라를 그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젊었을 때의 불타는 짝사랑을 하였지만 나이가 들고 음악적으로 깊이가 생기면서 클라라와는 이성적인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슈만이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브람스는 클라라와 자유롭게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도 있었지만, 1896년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브람스는 주위를 지키기만 했을 뿐 남녀 간의 사랑으로는 발전시키지 않았다. 우연히 클라라가 사망한지 1년 후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발전되었지 않았을까?

브람스의 고독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은 성장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는 삼류 악단의 단원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7살 많은 연상이었다. 41세에 브람스를 낳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조숙하고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인 브람스에게 연상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는 22세 때 스승 슈만의 ‘만프레드’서곡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고, 교향곡 1번의 구상을 하였다.
그렇지만 교향곡 1번의 1악장을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7년 후인 29세였다. 여기서 중단하였다가 12년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작곡에 착수하였다. 그 후 숱한 수정을 거쳐 1876년 9월 그의 나이 43세에 완성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러는 “이제서야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극찬 하였다.

이 표현 때문에 마치 브람스가 베토벤의 추종자나 후계자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브람스의 업적은 베토벤의 뒤를 이은 교향곡의 완성이 아니라, ‘절대음악의 추구’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브람스의 음악은 굉장히 쓸쓸하게 느끼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공자들에게 브람스의 음악은 많은 음표의 나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인 성격을 표현해야 한다. 집중력을 엄청 쏟아야 하기 때문에 연주가 끝마치면 엄청난 피곤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음악 애호가라면 반드시 들어봐야 할 명곡이다.

서곡은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연주하며,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채재일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 더운 봄날 가을이 우수를 느낄 수 있는 베버와 브람스의 연주를 들으며 한주를 보내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에 새 대통령이 선출되어 새롭게 출발하였듯이 포항시립교향악단에도 새로운 지휘자가 와서 포항시민의 사랑을 받는 악단으로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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