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영 ·포항시공무원 칼럼니스트

온 세상이 꽃 천지다, 희망의 상징 노오란 개나리, 절세미인 벚꽃, 행복과 감사의 민들레, 부귀의 상징 모란, 영원한 애정, 사랑의 고백 튤립 등 어딜 봐도 겨우내 움츠렸던 풍성한 꽃들의 향연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은 추운 겨울을 활짝 걷어 내고 창공에 눈부시게 흩날린다.
아파트 담벼락에 주차된 차들의 지붕에도 하얗게 벚꽃비가 내리고 바짝 말라 사그락 거리던 내 마음에도 아지랑이 일렁거린다.
길거리 골목 어귀 어귀마다 이름 모를 야생꽃들 조차 날 좀 봐 달라고 아우성이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꽃을 아름답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꽃이 아름다워 보이는가?라고 칸트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졌다.
꽃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인데 우리 마음의 내면의 변화에 따라 어느 날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다가 어느 날은 꽃을 봐도 전혀 감흥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데 나의 내면의 변화 상태에 따라 어느 날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하나 밖에 없는 ‘백마 탄 왕자’ 로 보이다가 어느 날은 ‘내가 눈이 삐었지, 왜 저런 사람을 사랑했을까’ 하는 자책이 들 때도 있다.
물은 물일 뿐이고, 산은 산일 뿐이고 꽃은 꽃일 뿐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희비(喜悲)가 엇갈린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았을 때 그 대상이 우리가 스스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 놓은 내 자신만의 도식에 의한 틀에 맞아 떨어졌을 때 느끼는 쾌감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나의 마음속의 정형화된 틀에 그 대상이 똑 맞아 떨어졌을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비로서 사랑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아름다움도 사랑도 나 자신 스스로 쌓아가는 성이다.
만나는 이마다, 전화나 톡으로 안부 전하는 이마다, 온통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봄의 꽃 이야기다.
페이스북에도 인스타그램에도 카스에도 온통 봄의 전령사 꽃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떠나고 싶다는 그 맘이 들 때 훌훌 아무 미련없이 떠나는 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이다.
지금 즐기지 않으면 지금 감상하지 않으면 그 꽃은 곧 낙화하고 말 것이다.
이 화려한 봄에 이런 꽃들을 보고 아무런 설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바쁘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없이 분주한 일상에 묻혀서 하루하루 급급하게만 사는 것은 아닌지, 잠시 한 박자만 삶의 속도를 늦추어 보자.
어린 시절 많이 한 땅따먹기 놀이가 생각난다, 동그라미 그려놓고 작은 손을 최대한 벌려서
내 땅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늘려 보려고 치열하게 애를 쓰던 추억이 생각난다.
어둠이 내리고 집집마다 익숙한 메케한 연기가 굴뚝으로 솟아오르고 엄마가 저녁 먹자고 큰 소리로 부르면 그렇게 아등바등 한 뼘이라도 더 나의 땅을 늘리려고 애쓰던 소중했던 내 땅을 버리고 흙 묻은 손을 탁탁 털고 아무런 미련 없이 집으로 달려 가던 소녀….
우리는 모두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순간에 ‘아, 이 생애는 참으로 행복했고 후회 없이 잘 살았다’라고 말하기를 소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 우리가 시시하게 하찮게 여겼던 소소한 일상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사소한 행복들은 미래를 위해 잠시 보루하고 돈 좀 더 모으고, 아이들 좀 더 키워 놓고, 좀 더 출세하고 난 뒤에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사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것에 때가 있듯이 지금 해야 할 것은 지금 해야 한다, 지금 피는 꽃은 지금 보아야 아름답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다는 보장도 없다, 먼 미래에 그들을 찾으려 해도 그들을 세월 따라 훌쩍 커 버렸을 것이고 낙엽 따라 훨훨 멀리 날아가 버렸을 것이며 그들의 눈과 심장은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 꽃 참 아름답다고 그 사람 참 향기 나는 사람이라고 먼 미래의 꽃과 사람이 아닌 지금의 꽃과 사람을 내면으로 깊이 만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힘을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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