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영 포항시공무원·칼럼니스트

초등학교 때 매일 일기장 숙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서 오늘 일기를 너무 감명 깊게 잘 썼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그 일기장 내용은 다름 아닌 죽장 다리 밑에 사는 꼭지라는 거지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엄마가 집으로 불러서 머리를 감겨 주었는데 하얀 수건에 까만 이가 많이 붙어 있어서 참 슬펐다는 그런 류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때부터인 것 같다. ‘아, 나는 글쓰기에 재주가 있구나’ 소녀 시절에는 각종 유명한 시들을 필사를 하고 연애 시절에는 자작시도 쓰고 아름다운 유명 시도 분홍색 편지지에 이쁜 글씨체로 꾸며서 참 많이도 보냈었다.
학창 시절에는 남자들이 아주 하찮게 보였었는데 어느 날 운명의 첫사랑 남자를 만나 6년의 연애 동안 수백 통의 연서를 보낸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는데 그때 보낸 수백 통의 편지들이 지금은 장롱 속에 고스란히 있는데 한 번씩 읽어 보면 어떤 것은 내가 쓴 시인지, 어디서 필사한 것인지 아리송한 것도 참 많다.

이제 나의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내어 맡깁니다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해 주는
이를 만나면 그의 손에
나의 전부를 내어 맡길 수 있음은

그가 내게
자유를 주는 까닭입니다

그대와 나의 관계는
내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더 이상 아름다운 관계를
나는 알지 못 합니다
그것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그 깊은 떨림 그 벅찬 깨달음
그토록 익숙하고 가까운 느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시작 되었습니다

그날의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고
천배나 더 깊고 더 애틋해져만 갑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 둘을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영혼이 쉬는 자리는 아름다운 작은 숲
그대에 대한 나의 이해가 사는 그곳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참 많이도 사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연시이다, 결혼을 하고도 시청문학회, 도청문학회에 글을 기고하고 칼럼도 많이 썼지만 아름다운 시를 잊고 산 듯하다, 참 오랜만에 다시 시를 써 보았다.

너에게 나는

너에게 나는
가시 밭 길도 용기 내어 건너게 하는
희망 응원가 해바라기이고 싶다

햇살처럼 어둠 환하게 밝혀 주는
태양만을 위해 존재하는 해시계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운명이고 싶다

관용과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
어떤 장애물도 앞서 물러나는
눈 감으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고 싶다

너에게 나는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이고 싶다

폭풍우 치는 인연의 벼랑에서 만난
이 사람이 아니면 오열하는
꼭 이 사람이어야만 하는 간절한 기도이고 싶다

너와 나로 분리된 우리가 아닌
태초부터 하나였던 우리를 찾는 긴 여행도
오랜 기다림조차 행복한 이유이고 싶다

너에게 나는
지친 하루의 끝에 작은 손 하얗게 흔드는
은은한 장미꽂다발이고 싶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상처 입은 날개
다독여 보듬어 새 살 돋게 하는
친절한 영혼의 치료자이고 싶다

자석처럼 너에게로 파도치는
비발디 사계 같은 사시사철 안락한 쉼터
가지 많아 무성한 보리수 그늘이고 싶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시, 아름다움, 낭만, 젊은 열정과 때 묻지 않았던 순수한 사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너무나 각박하고 이기적이고 세속화 되어 버린 타성에 젖은 계산적인 낡은 마음에 클래식 음악 같은 아름다운 선율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시로써 건져 올려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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